새벽 6시 30분이면 밍구와 산책을 나간다. 야외 배변을 선호하는 밍구 때문에 무조건 나가야 한다. 밖이 아니면 대, 소변을 참아 버리는 밍구가 안쓰러워서 하루에 최소 두 번 밖에 나간다. 매번 같은 시간에 나가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도 항상 겹친다. 3-4명이 무리 지어 공원을 걷는 할머니들이 계신다. 밍구 이름을 계속 물어보셔셔 알려드리는데도 항상 틀리신다. 오늘은 밍구 이름을 기억하시고 반갑게 불러 주셨다.
"민국아, 민국아, 오메 귀여운그..." 옆에 있는 할머니가 "옴메, 밍구랑게, 민국이가 아니라"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국이를 연신 부르며 귀여워해 주신다." 할머니가 예뻐해 주려고 밍구를 부르지만 이상하게 밍구는 할머니에게 가지 않고 도도하게 그냥 앉아 있는다. 할머니가 서운하다고 하지만 밍구의 태도는 바뀔 모양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민국이도 정겨운 이름 같다."
이사 온 뒤로 밍구 병원을 집 앞으로 옮기게 되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고 평판도 좋은 병원이라 행운이라 생각했다. 특이한 게 이 병원은 예약이 없다.
그냥 먼저 가서 접수하고 기다리면 된다. 아침 일찍 갔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동물 병원이 그런데 너무 좁아 반려견들까지 대기가 길어지니 아이들이 낑낑거리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심해졌다. 의사 선샌님은 두 분이 계신 것 같은데 너무나 친절하셨다. 심장사상충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주사까지 해서 밍구는 3방의 주사를 맞았다. 밍구도 산책 갈 때 하고 병원 갈 때 하고 직감으로 구별하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 병원 가는 날은 유모차 안에서 계속 떨며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밍구는 빨리 가서 그런지 다행히 병원에서 오랜 시간 있지 않고 나왔다. 날씨가 좋아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중간쯤 갔을 때 밍구 얼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왠지 밍구의 화가 많이 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얼굴을 쓸어 만져주다 보니 화난 표정이 아니라 얼굴이 빨갛게 붓고 있었다.
와이프가 화들짝 놀라더니 병원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좁은 병원에 다시 갈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밍구의 얼굴은 점점 더 부어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흡사 복싱 경기 2,3라운드를 치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응급으로 의사 선생님이 보시더니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0분 정도 후에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예전 얼굴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와이프는 어제 쪼그만 치와와 한 마리가 줄이 풀려 미친 듯이 달려와 밍구 다리를 물었는데 그 아이가 광견병 접종을 안 해서 밍구가 이런 것 같다고 했다. 합리적인 의심이었지만 의사선생님은 대수롭게 듣지 않으신 것 같았다. 주사 접종 후 이런 증상은 너무나 자주 있는 일이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밍구는 집에 오더니 피곤했는지 쓰러졌고 저녁에 와서 보니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다..
웰시코기는 소형견이 아니라 중형견이다. 사실 밍구를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도 조그마하던 아이가 7킬로 정도 나가는 중형견이 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복슬복슬 올라온 털에 아장아장 발밑을 기어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잠만 자던 밍구의 변화가 아직도 경이롭다. 주변에서 웰시코기를 분양받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강아지 중에 가장 털이 많이 빠지는 게 웰시코기야" "중형견이라 아파트에서 키우기 힘들 건데..." "오래전 옛날 영국에서 소몰이를 하던 애들이라, 에너지가 장난 아니라던데 감당할 수 있겠어?"였다.
사실 밍구가 어릴 땐 듣고도 그러려니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지금 밍구가 앉았다 일어난 자리는 털이 수북하다. 산책하고 돌아올 때 잠깐 안고 있으면 옷은 이내 털로 가득하다.
3일마다 한 번씩 거실 바닥을 쓸고 닦아도 이내 다시 털이 쌓인다. 조그맣게 엥엥 거리며 짖던 목청도 가끔 귀 옆에 대고 짖기라도 하면 고막이 나갈 것 같다.
흉통이 커서 그런지 정말 진돗개가 짖는 소리가 난다.
점점 커가는 밍구는 의견 표출을 할 때 자주 짖는다. 아파트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조금만 짖어도 밍구에게 야단을 치거나 요구를 들어주어 짖지 못하게 한다.
언젠가는 새벽에 문닫힌 딸아이 방에서 나오고 싶다며 밍구가 짖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이웃을 만난 아들이 한마디 했다. "엄마, 아랫집 아줌마가 자기도 개 키워봐서 이해는 하는데 새벽에 밍구 안 짖게 해줬으면 좋겠데"
그 뒤로 밍구가 짖는 것에 가족들 모두가 민감해져 밍구에게 눈치를 줬더니 밍구는 짖으려고 입을 별렀다가 꾹 참고 자체 음소거를 하여 아주 작은 소리로 짖다가 멈치기를 반복했다.
강아지가 짖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우리 눈치를 보며 짖는 밍구가 안쓰럽기도 했다.
웰시코기가 독립적인 성격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밍구도 어렸을 적부터 잠은 거실 자기 집에서 혼자 잤다.
가끔은 딸아기 침대 밑에 들어가 자다가 지금은 안방 침대 옆 정확히 말하자면 와이프가 자는 쪽 침대 아래에서 잠을 잔다.
침대에는 절대로 올리지 말라고 딸아이에게 당부했지만 가끔은 아직도 침대에 딸아이와 함께 하고 있는 걸 목격한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땐 밍구는 조용히 거의 잔다. 가족들이 외출 후 들어올 때도 시크하게 맞이하지 막 달려와 안기거나 뒹굴거나 하지 않는다.
어제 새벽에 발밑에 감촉이 이상해 눈을 떴다가 인어공주처럼 내 발이 변한 줄 알고 눈을 몇 번이나 비비고 확인했다.
순간 어두워서 내 발로 착각했던 다리는 우리 밍구의 다리였다.
어찌 된 일이지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새벽 4시에 침대 밑에서 자던 밍구가 놀아주라고 와이프에게 낑낑 거려 침대에 올려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