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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을 긴 세월이 흘러 만나게 되었다.

장난기가 많았고 엉뚱한 구석이 있었고 아기 피부에 거무스럽게 난 콧수염이 인상적인 친구였다.

늦게 나간 술자리에 그 친구는 화장실에 가고 자리에 없었다.

얼마 후 들어온 고등학교 친구는 "멀리서 들어도 네 목소리 알겠더라" 하면서 비좁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아직은 싱글이었고 친구들 모두가 그렇듯이 세월의 흐름은 거스르지 못하여 그 나이의 어른스러운 얼굴로 변해있었다.

그 친구도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이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헤어질 때가 되자 친구가 자기 전화기를 내 손에 건넸다.

자연스럽게 내 폰번호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주머니에서 내 전화기가 울렸다.

장난기가 많았고 엉뚱한 구석이 있었던 친구는 굉장히 차분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중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친구는 술은 못 마신다고 하여 무알코올 맥주를 마셨고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를 데려다준다고 했다.

대리기사님을 기다리는 친구를 같이 기다리며 그 친구는 담배를 연이어 두 대를 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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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어김없이 밍구가 산책 가자고 침대 밑에서 반 묵음으로 으르렁 거린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주변을 걷는데 아침부터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단지내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떠오르는 태양을 정면으로 받는 길을 걷다가 어지러움에 잠시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여름이니깐 덥다는 명제에 문득 생각에 잠긴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가까웠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밖에서 산책하지 못했겠지?

겨울이란 계절은 없었겠지?

우주를 만든 무엇인가는 어떻게 태양과 지구의 거리를 알맞게 만들었을까?

문득 겨울이 있다는게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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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와 사이좋게 여름용 덧신을 구매했다.
각각 10켤레를 사서 신었다.

덧신을 잘 신고 빨래를 하고 나서 문제점을 발견했다. 애들 것과 뒤엉킨 덧신들을 와이프 것 내 것 구별해서 접기가 힘들었다.

날씨가 더워 대충 덧신들 짝을 맞추어 옷장에 넣었다.

다음날 집을 나와 걷는데 한쪽 발이 피가 안 통할 정도로 답답했다.

덧신 한쪽은 정 사이즈 내 것, 한쪽은
와이프 덧신을 신었던 것이다.
걸을 때마다 덧신 한쪽이 벗겨졌다.

신발을 벗어 덧신을 바로잡은 뒤에 다시 신기를 반복했다.

덧신은 신축성이 있기에 다음에는 같은 사이즈의 덧신을 구매해 나눠 써야겠다.

와이프와 다른 사이즈의 덧신을 샀던 게 "잘못된 판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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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침대, 아파트 그리고 그속에 있는 엘리베이터.일어나 생각해보니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는 네모가 참 많다. 앞에서 언급한 네모 중에 엘리베이터란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엘리베이터란 공간은 협소하다 아주. 그것을 타고 목적지까지 갈 때 우리는 혼자 가기도 하지만 여러사람들과 함께하기도 한다.

사실 난 매일 혼자 타고 가기를 원하지만 개인용 이동수단이 아닌 이상 그것을 이용하려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용해야 한다는걸보니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름대로 생각한 엘리베이터 예절이라 함은 우선 타기 전에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으니 문 앞에 바짝 서있지 않는다.

가끔 생각 없이 문 앞에 코를 대고 있다가 타인과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 경험해봐서 알 것이다. 항상 문 옆에 서서 문이 열리는 걸 확인하고 타야 한다. 외국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엘리베이터 예절을 참 잘 지키는 곳은 일본이라 생각한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반경이 좁아지는 그곳에서도 그들은 간격을 되도록이면 유지하려 하며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애쓴다. 물론 그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 찼을 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엘리베이터 러시아워일 때는 탑승객들이 하나둘 타면서 그들의 체취가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채운다.사실 난 후각이 예민해서 출근시간 사람들로 붐비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탑승객들의 체취로 그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분석하는걸 즐긴다.

몇 층인 줄 기억할 순 없지만 여자 A는 항상 머리를 말리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를 탄다. 물기가 흠뻑 젖어있는 머리카락을 볼 때 난 드라이어를 빌려주고 싶다.

이런 광경은 목욕탕 입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여자들이 머리가 길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시간적으로 머리카락을 건조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8층 남자 A는 생각보다 강한 땀냄새를 풍긴다. 사실 약간의 미스터리지만 이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땀을 많이 흘리고 있다.

격렬한 활동 후 샤워를 하지 않고 좁은 공간에 탔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사람의 땀냄새는 남들과 다른 강한 DNA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웃긴 건 만원인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난 문 가까이에 서서 문과 눈싸움을 하는데 왠지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뒷사람들에게 신경이 상당히 쓰인다.

물론 반대로 내가 엘리베이터에 처음으로 타고 한 사람 두 사람씩 엘리베이터가 채워질 때 가장 뒤쪽에 자리할 때 가장 편안하다. 나 역시 그때는 내 앞사람을 관찰하는 건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나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위로 옮기면서 좋은 신발 신었는데?

가방은 어디 브랜드지? 헤어스타일이 멋진데. 이 향수는 뭐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데 몇 살일까? 어디 놀러 가는군. 짧은 시간에 이 좁은 공간에서 나름 그 사람을 나도 모르게 파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봤자 10초 안팎일 것이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조그마한 공간에 남아있는 향기로 얼마 전 상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특히 배달음식이 이 공간을 이용했을 때는 침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음 얼마 전에 피자가 올라갔군. 이건 프라이드치킨이구나 하면서. 물론 남아있는 찐한 향수 냄새로 누군가의 형상을 어렴풋이 상상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안의 냄새는 이용하는 사람들의 허물같다. 그 사람이 벗어놓은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상황은 시선처리이다. 두 명이든 세명이든 그곳에 탑승한 이후로 문이 닫히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층수 확인이며 눈을 뗄 수 없는 것도 층수 화면이다. 절반의 사람이 목적지인 층수를 확인하면서 그 시간을 죽인다. 또 다른 절반은 스마트폰을 본다. 정말 정말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넘기며 시간을 죽인다. 하루 일과 중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엘리베이터 안의 시간은 현실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이 좁은 공간의 시간 그리고 만남을 난 즐긴다. 그 상대가 사람이든 체취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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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중에 어린이가 없어 평범한 휴일을 보낸다. 중간고사가 끝난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린이날을 보내고 우리 부부는 둘이 시간을 보냈다. 매번 가던 집 앞 스타벅스에 가지 않고 동네 주변으로 많이 늘어나고 있는 "커피 전문점"으로 시원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걸었다.

햇볕도 좋고 약간 더운듯한 날씨에 커피점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한낮에 사람까지 많아 좁은 커피숍 안의 공기는 더욱더 더운 것 같았다. 천장에 있는 에어컨에 바로 시선이 갔다. 굳게 닫힌 사면의 에어컨이 보였다.

"이런 날씨에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주면 좋을듯한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 손님들은 움직이지 않아 서있기에 사정이 좀 더 나았지만 계산대 넘어 분주하게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고 있는 어린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의 얼굴은 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더욱더 길어졌고 거기에 커피 배달 주문까지 겹치며 더욱더 바빠진 가게 안의 아르바이트생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3잔의 음료를 주문했는데 주문 순서대로 커피를 만들지 않고 중간에 혼자 온 손님이 그나마 만들기 쉬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그분들부터 커피를 내어주니 먼저 왔지만 통일된 음료를 시키지 않은 손님들의 대기시간은 한정 없이 길어졌다.

음료를 주문한지 30분 정도가 되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껴 카운터를 향하려고 했는데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미리 사태를 파악하고 음료 한 가지만 나오면 된다며 연신 죄송하다고 진심을 녹여 말해주어서 도리어 내가 민망해졌다.

그 와중에 천장에 돌아가지 않는 에어컨에 계속 신경이 쓰이고 쓰였다. "나기기전에 왜 에어컨을 작동하지 않는지 꼭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밀리고 밀려도 그 와중에 에어컨은 돌아가지 않아 더워도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웃으며 그리고 가끔 손님이 많아 힘들었는지 다 사용한 우유 종이를 화풀이하듯 세게 휴지통에 처박았지만 프로처럼 손님들에겐 친절히 응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기다리든 음료를 받자마자 연신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덥고 손님도 가게 안에 많은데 에어컨 틀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일하시는데 더워서 힘들 것 같아요"

그러자 아르바이트생이 대답했다. "저희도 더워 에어컨 작동하고 싶은데 사장님이 에어콘 시스템 오류로 작동이 안 된다고 해서요......"

점점 더 길어지는 커피숍 손님들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을 걱정하며 집으로 향했다.

손에 쥐어진 음료는 너무나도 차갑고 맛있었고, 어린이날 거리와 차도는 이상하리만큼 어수선하고 바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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