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들에게도 쓰지 않는 물건들을 추려서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얘들아 지금 방에 잠들어 있는 물건들, 아빠가 당근 마켓에다 팔아서 용돈에 보태줄게" 이상하게도 저희 아이들은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물건에 대해 유독 애착이 많아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에 쌓여있는 게 한가득 됩니다.
2. 쓰지 않는 물건을 집에서 비우고 미니멀하게 살아보자고 요즘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고등학생인 아들이 초등학교 때 열심히 사 모았던 "마술 카드"를 3개를 팔아주라고 가지고 왔습니다. 어렸을 때 마술 카드에 빠져 용돈을 받는 족족 카드를 사 모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저희 아들이 마술사가 꿈인 줄 알았을 때입니다.
3. 그 많은 카드 중에 딱 3개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걸 누가 살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당근 마켓에 올려보았습니다. 구매했을 때 가격은 정확히 모르지만 값이 싸진 않았을 겁니다. 3개 해서 5천 원에 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너무 싼 거 같은데, 아빠"라고 했습니다. "새 상품이 아닌 이상 비싼 가격에 어느 누구도 구매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알았어"라고 합니다.
4.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채팅이 왔습니다. "카드 사고 싶은데요, 그런데 제가 차가 없어서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학생인 거 같았습니다. 5천 원짜리 카드를 구매자에게까지 가져다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차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5. 그렇게 두, 세 번의 학생 고객과 똑같은 이유로 카드를 판매하지 못하고 어느 날 바로 옆 동네에 사는 학생 한 명이 구매의사를 보였습니다. 출근길 지나가는 길에 가져다주겠단 생각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팔지 못할 거 같단 생각도 했습니다.
6. 약속 장소는 동네 초등학교 앞으로 정했습니다. 먼저 도착해 초등학교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구매자를 기다렸습니다. 곧이어 곧 도착한다는 구매자의 채팅을 받았습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자전거를 탄 학생이 보였습니다. 딱 봐도 카드 구매하는 학생인 줄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학생의 자전거 옆에는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7. 서로 알아보며 가벼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학생은 주머니에서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꺼내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갑에서 돈을 주섬주섬 빼던 구매자 학생 손에서 동전들이 땅이 떨어졌습니다. 주위의 초등학생들이 달려들어 굴러다니는 동전을 주어서 자전거를 탄 소년에게 돈을 쥐여주었습니다. 카드 구매 대금 5천 원 중의 일부였던 거 같습니다.
8. 다행히 동전을 다 줍고 나자 신호가 바뀌어 초등학생들과 무리 지어 구매자는 저와 마주했습니다. 예상대로 학생은 천 원짜리 4장과 잔돈인 백 원짜리 열 개를 제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저희 아들 카드인데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으니, 잘 쓰세요!"했습니다. 수줍고 착한 미소를 지닌 자전거 소년은 카드를 손에 쥐고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9.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차를 잽싸게 타고 초등학교를 벗어났습니다. 차 안에서 돈을 세어보았습니다. 잔돈을 흘려 몇백 원 부족할줄 알았는데 정확히 맞습니다. 잔돈을 보면서 집에 있는 돼지 저금통에서 천 원이 모자라 가져왔지는 않나 상상했습니다. 괜히 자전거 소년에게 미안했습니다. 어른이 5천 원 벌어보겠다고 코 묻은 학생의 돈을 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출근했습니다.
10. 천 원짜리 4장과 백 원짜리 열 개를 아들의 저금통에 넣어주었습니다. 아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쿨한 미소를 짓더니 방으로 들어가기 전 혼잣말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싸게 판 거 같아" 조용한 말이었지만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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