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입금을 차일 피일 미루더니 결국엔 폐업을 한 거래처가 있다. 입금을 하지 못한 다양한 답변이 문자와 전화 통화로 오갔다.

"짐 뺄 때 보증금 받으면 바로 입금할게요, 걱정 마세요."
"와이프가 아직도 입금 안 했어요?"
"제가 심하게 아파서 연락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부터 연락이 안 된다. 처음에는 구구절절한 문자를 보내지만 이쯤 되면 간단히 "추심 기관에 이관했으니 앞으론 그쪽에서 관리할 것입니다."로 마지막 연락을 보낸다.

그러면 연락이 오는 거래처가 있고 그래도 연락이 감감무소식은 거래처가 있다.

전자처럼 연락이 와서 해결되면 좋지만 거의 대부분이 후자에 속한다.

추심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미수 거래처 미수 규모와 경제 상태를 파악해서 알려 주었다. 99.9% 프로 이상이 이미 다른 곳에도 미수나 대출이 깔려 있다.

나에게 있는 미수가 가장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에겐 그들에게 받을 돈이 큰돈이지만 그들에겐 나에게 줄 돈이  작은 돈이 돼버린다.

그보다 더 기분이 나쁜 건 그다음이다.
미수자로 등록되어 있는 그들의 카톡 프로필을 볼 때이다.

프로필의 사진과 문구가 바뀔 때마다 씁쓸한 한숨만 나온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웨딩포토를 찍으며 웃고 있는 거래처 사장님들, 아이들과 펜션에서 어부바를 하며 놀고 있는 사진, 여자친구와 바닷가에서 파도를 바라보는 사진들...

나는 카톡 프로필에 어떠한 사진들도 문구도 올리지 않는다. 저들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들이 그들에게 미수금을 못 받고 있는 사람에겐 상처를 줄 수 있기에...

남의 돈 떼먹고 잘 사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728x90

'어쩌다 사장님(회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실 점심  (1) 2024.03.27
인생의 변곡점  (0) 2020.12.23
728x90

밖에서 영업하는 직원들 빼고 창고를 보는 창고장과 경리 직원은 점심을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다. 한때는 매번 다른 매뉴로 주문을 하느라고 경리직원이 힘들었다.

중국집, 뼈다귀, 김치찌개, 비빔밥 그리고 분식까지.. 참 다양하게 시켰었는데.

2년 전부턴 백반집에서 점심을 가져다준다. 처음 시작했을 땐 가격이 7천 원이었는데 원자료 가격이 올라서 지금은 인당 8천 원을 받는다. 점심을 사무실에서 먹을 때도 있고 안 먹을 때도 있다. 사실 백반이 질려서 되도록 밖에서 먹는다.

가끔은 혼자 차 속에 앉아 햄버거로 점심을 먹을 때도 많다.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먹는 점심 보단 혼자 고립돼서 먹는 점심이 너무 맛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백반 대신 중국집에서 탕수육 같은 별식을 내가 주문한다. 내가 백반이 질리면 사무실 직원들도 백반이 질렸을 것이다.

점심 백반을 배달해 주시는 분들이 3번 정도 바뀌었다. 첫 번째 중년 여사님은 하이톤에 엄청 밝으신 분이었다. 밥을 가져다주실 때마다 활기가 돌았다. 두 번째는 50대의 중년 아저씨가 배달을 오셨다. 내 느낌엔 백반집 사장님 남편이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아저씨는 이제까지 배 달해 수시는 분 중 가장 나이가 어릴 듯 보이는 여성 한분과 함께 배달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성분에게 아저씨가 배달 코스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 여성분 혼자 배달을 오기 시작했다. 우리 사무실에 점심이 오는 시간은 항상 11시 30분이었다. 여성분이 혼자 배달을 오기 시작하면서 점심은 12시에 도착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점심 배달이 11시 50분에 오더니 또 일주일이 지나고 11시 40분 그리고 오늘은 11시 30분에 점심이 도착했다.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듯 여유가 없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얼굴에서도 약간의 여유가 보인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조그마한 일이든 큰일이든 익숙해지면 여유가 생기고 빨라진다.

728x90

'어쩌다 사장님(회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상 하는 사람들  (1) 2024.05.07
인생의 변곡점  (0) 2020.12.23
728x90

1.결혼후 부푼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만삭인 아내는 테리야키집에서 나는 한국인 슈퍼에서 맞벌이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대학교 합격 통지를 받고 몇일후 너무도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뇌종양말기 판정을 받았다. 만삭인 아내의 출산후 한달 첫째가 비행기를 탈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우리세식구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돌아온뒤 2년간의 투병후 아버지는 우리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말그대로 완벽한 아버지 이셨다. 아버지 그늘아래 항상 온실속의 화초처럼 보호받았던 우리가족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는 모두에게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게 되었다. 변곡점은 너무도 뚜렸하고 커서 점이 아닌 구멍과도 같았다.

728x90

'어쩌다 사장님(회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상 하는 사람들  (1) 2024.05.07
사무실 점심  (1) 2024.03.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