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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고등학생 아들은 기숙사에서 집에 온다.
아침에 잠시 책을 읽으러 서재 문을 열었다.
넓디넓은 책상엔 어제 도착한 아들의 책 가지가 널려있다.
나만의 공간이 사라졌다.

초등학생 딸은 나이에 비해 배려심 많고 아빠를 잘 챙긴다.
하지만 아직 자기방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안방 나의 자리에서 취침을 한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면 안방에서 안 잔다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책 한권을 챙겨 딸아이의 방으로 향한다.
아침에 깔끔했던 방안은 온통 딸아이의 옷으로 덮여있다.

주섬주섬 옷들을 치우고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자는 곳은 딸의 침대다.

월요일 아들이 학교로 돌아가면 아들의 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내 공간을 찾기에 분주하다.

나는 초저녁에 잠을 자고 새벽 5시에 기상한다.
퇴근시간이 늦은 아내는 나와는 정반대의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10시 정도에 출근해 8시에 퇴근을 한다.

나의 퇴근시간은 오후 4시이다.6시가 되면 항상 배가 고프다.
와이프와 딸을 기다리며 함께 저녁을 먹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배고픔에 부쩍 늘어나는 신경질과 예민함에 포기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늦게 끝나는 와이프의 생활 패턴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혼자 먹는 저녁은 싫다.
가족들을 기다리다가 함께 먹는 저녁은 나의 배고픔에서 비롯된 짜증 때문에 싫다.

지금은 서로의 시간차를 배려한다.
내가 먼저 6시에 저녁을 먹은 뒤늦게 들어올 가족들을 위해 미리 음식을 준비해 둔다.

함께 저녁을 하진 못하지만 서로의 시간차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출근이 빠른 난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한 뒤 조용히 옷을 챙기러 안방에 들어간다.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하지만 옷장에 옷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조그만 보조등을 켠 뒤 옷을 챙겨 나간다 아주 조심스럽게.
아내는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해 이불을 뒤척인다. 아마 내가 들어온 걸 알고 잠에서 깼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딸아이 방으로 옷장 까진 가져갈 수 없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더 커가면 가족과의 시간차에도 변화가 다시 올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딸아이는 자기 방으로 갈 것이며 나도 다시 안방으로 복귀해 나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
아들은 얼마 안 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며 서재는 다시 나의 공간이 될 것이다.

따로 또 같이 가족들의 시간차가 바뀌며 애들은 커가며 나와 아내는 나이 먹어 가겠지.
그리고 가족 간의 또 다른 시간차가 생길 것이다.

집안의 모든 방들에 조금씩 지분을 가지고 생활한다.
시간이 지나면 각 방들과 나의 계약관계도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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