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에 종량제 봉투를 들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상당히 빠른 속도여서 내 앞을 지나갈땐 바람이 일더라. 알고보니 그 사람은 횡단보도의 초록색 숫자가 줄어들기 전에 그곳을 통과하려고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내 앞을 지나치자 뭔가 땅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가났다. 바닥을 보니 휴대폰이 떨어져 있었다. 얼른 전화기를 주어 큰소리로 그 사람을 불렀다.
이미 횡단보도 끝을 달리던 남자는 아무리 소리쳐도 횡단보도 반대편을 보지 않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남자는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 반갑게 서로를 끌어 안았다.
여전히 내손에는 그의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크게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댔으나 돌아 보지 않았다.
그의 전화기를 그제서야 자세히 보았다. 에미넴의 노래가 플레이 되고 있었고 전화기 뒷면엔 비자카드가 꼽혀 있었다. 블루투스로 음악을 듣고 있었나 보다.
빨간색 민소매 농구 져지에 헐렁한 바지 그리고 아이보리색 팀버랜드 워커를 신고 있어 20대 젊은이로 생각했었다.
남자는 전화기가 없어진줄 알고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오면서 이제서야 손을 흔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빨간불 신호등에 서로 마주보며 횡단보도 끝에서 신호가 바뀌기만을 바라 보고 있었다.
남자는 계속 나를 보며 머리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를 보니 20대가 아니었다. 얼굴에 주름이 많았고 턱수염엔 흰색털이 많았다.
40대 중반은 되보였다. 전화기를 건네주고 돌아서는데 계속해서 감사인사를 하는데 어색해서 얼른 자리를 피했다. 누군가를 도와줬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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