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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본 잠실 야구장 그리고 기아타이거즈

본 투비 기아타이거즈 팬인 나,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야구를 알게 된 초등학생 때부터 "해태 타이거즈" 팬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가보았던 무등경기장 아직도 야구장 계단을 올라 초록색 그라운드가 눈앞에 펼쳐진 첫 야구장의 가슴 벅찬 이미지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선동열 선수의 피칭과 이종범 선수의 도루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겐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수없이 가던 추억의 무등경기장에 이어 최신식 구장인 챔피언스 필드가 생겼을 땐 너무나 좋아했던 기억도 생각이 난다.

기아 챔피언스 필드가 새로이 생겨나고 다른 구단들도 하나둘씩 메이저리그를 표방한 관중 친화적인 야구장들을 하나둘씩 짓기 시작했다.

야구팬으로선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기아가 아닌 팀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원정팬들을 보면 "남의 홈구장에서 뭐야?"란 속 좁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야구를 너무 좋아했지만 한 번도 기아 홈구장을 벗어나 야구를 관람한 적이 없었다.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지침이 떨어지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챔피언스 필드를 친구와 찾았었다. 육성 응원과 야구장에서의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문득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버킷 리스트에만 있었던 타이거즈 원정 경기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일주일 후에 전국구 팬을 가진 엘지와 잠실에서 경기가 있었다.

야구팬으로만 따지면 두 팀 다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팀이라 역시나 잠실구장의 좋은 자리들은 매진이었다. 아쉬웠지만  남아있는 건 홈플레이트 뒤쪽 그것도 가장 높은 곳의 두 자리가 남아 있어 주저하지 않고 예매했다.

하지만 그 두 자리도 앞뒤로 나눠 앉아야 했다. 와이프에게 상황 설명을 했고 와이프가 내 뒷좌석에 앉기로 했다.

야구 관람이 주목적이니깐 할 말 있으면 등을 두드리고 말하라고 와이프에게 말했다.

1박2일 일정으로 갔기에 잠실야구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토요일 5시 경기가 열리는 잠실 구장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기아와 엘지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경기장 앞을 꽉 메우고 있었다.

티브이에서만 보았던 잠실구장의 그라운드는 낯설지 않았지만 화면에서 보이지 않던 야구장 뒤편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요즘 지어진 관중 친화적인 구조는 아니어서 음식을 사면서 그라운드 경기를 볼 순 없었다.

내가 예약한 316블록은 생각보다 경사가 심해 올라가는데 발을 헛디디면 큰일 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 가장 높은 자리이지만 그라운드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좋아 놀랐다. "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란 생각이 들었다.

경기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열정적인 홈팀 엘지 팬들이 야구장 절반을 채웠고 정확하게 그 절반을 원정팀인 기아 팬들이 절반의 관중석을 채웠다. 역시 전국구 팬덤을 가진 투팀의 경기 정말 잘 왔단 생각을 했다.

절반을 서로 나눈 양팀 팬들

비어있던 내 옆자리엔 중학생 친구들이 3명 줄줄이 앉았다. 기아 타이거즈를 사랑하는 어린 친구들이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와이프에게 맥주를 건네려고 등을 돌리는 순간 비어있던 와이프 옆자리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줄줄이 앉았다.

맥주를 와이프에게 건네주고 불안한 시선을 와이프와 주고받았다. 와이프 옆에 앉은 건장한 청년 세명은 50미터 밖에서도 엘지 팬임을 알 수 있는 "엘지의 유광점퍼"를 입고 있었다.

와이프 양옆으로 모두 엘지 팬들이 자리를 잡았다. 미안했지만 자리를 바꿔 줄 순 없었다. 경기 중간중간 뒤돌아보니 건장한 사내들 사이에 앉아 있는 와이프가 유독 작게 느껴졌다.

와이프와 같이 먹을수 없었던 쓸쓸한 핫도그

웃프지만 야구장에 와이프와 같이 왔지만 혼자 야구장에 온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모든 관중석이 꽉 차고 양 팀의 응원 소리가 좌우 스테레오로 들리는 기아의 챔피언스 필드에선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에 이상하게 가슴이 벅찼다.

경기는 엘지에 끌려갔지만 타이거즈의 "소크라테스"가 동점 스리런홈런을 치면서 야구장의 열기는 최고로 치솟았다. 동점 홈런이 나온 순간 나도 모르게 뒤돌아 와이프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했지만 와이프 옆에 앉은 건장한 엘지 팬과 눈이 마주쳐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아 그라운드에 집중했다.

와이프와 난 야구에 조용히 집중하며 관람하는 스타일이라 일어서서 응원을 하거나 율동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야구팬들을 구경하는 것은 즐겁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와이프 옆에 앉은 건장한 엘지 팬들은 어마어마한 소리로 엘지를 응원해서 깜짝깜짝 놀랐지만 옆에 앉은 와이프는 더 놀랐을 거라 생각해서 뒤돌아 볼 수 없었다. 경기가 7회를 넘어갈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두 분이 짐을 싸서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와이프와 옆자리에 같이 앉을 수 있었다.

동점으로 대등하게 가던 경기는 후반에 엘지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와이프와 따로 또 같이 앉았던 것도 훗날에 좋은 에피소드로 기억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구장을 나오면서 외야를 바라보니 09년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이 큰 포물선을 그리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몇 번씩 뒤돌아 보며 잠실 야구장 그라운드를 기억 한편에 담아보려 노력했다.

나보다 더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과 꼭 다시 타이거즈 원정 경기를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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